안중식(安中植)은 1861년(철종12)에 태어났다. 조선 말기의 화가이다. 본관은 순흥(順興). 초명은 종식(種植). 욱상(昱相), 자는 공립(公立), 호는 심전(心田), 자당(資堂), 심전(心筌), 경부(耕夫), 경묵도인(耕墨道人), 용인(庸人), 경묵용자(耕墨傭者), 불이자(不二子), 불부옹(不不翁) 등. 그는 서울 청진동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성균생원 홍술(鴻述)이며, 어머니는 밀양주씨(密陽朱氏)이다. 12세때 부모를 모두 잃은 사실 이외에 그의 어린 시절은 알려져 있지 않다. 1881년 신식무기의 제조법과 조련법을 배우기 위하여 중국으로 떠났던 영선사(領選使) 일행의 제도사(製圖士)로 조석진(趙錫晋)과 더불어 천진(天津)에서 1년동안 견문을 넓히고 돌아왔다. 이때 알게 된 조석진과는 평생을 친구로 사귀면서 당시 화단의 쌍벽을 이루었다.

1902년 어진도사(御眞圖寫)에 조석진과 더불어 화사(畵師)로 선발되어 화명을 높혔다. 어진도사 이후 그의 화실인 경묵당(耕墨堂)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며, 1911년 이왕가(李王家)의 후원으로 서화미술원(書畵美術院)이 설립되자 이곳에서 조석진. 김응원(金應元) 등과 같이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 서화미술원 출신으로는 이용우(李用雨). 오일영(吳一英). 이한복(李漢福). 김은호(金殷鎬). 박승무(朴勝武). 최우석(崔寓錫). 노수현(盧壽鉉). 이상범(李象範)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한국 근대전통회화를 이끌게 되는 대표적인 화가들이 되었다.

1919년 민족서화가들을 중심으로 서화협회(書畵協會)가 결성되자 초대회장으로 선출되어 서화계의 지도적 인물로 추앙되었다. 회장으로 추대되기 두 달 전인 4월 초순 3.1운동과 관련되어 내란죄라는 죄명으로 경성지방법원의 예심에 회부되었다가 곧 석방되었으나, 이로 말미암아 쇠약해진 몸을 회복하지 못한 채 그해 사망하였다. 그는 서양식의 뎃상법으로 대상의 특색을 정확하게 다루었던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畵)에도 능하였지만, 그의 화풍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산수화이다.

경물(景物)을 공간 가득히 채워 밀폐시키는 구도를 특징으로 하는 전기의 화풍은 그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 장승업(張承業)의 화법을 주로 따랐으며, 후기에는 남북종이 융합된 절충 양식을 토대로 원숙한 화풍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화풍은 서화미술원출신의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근대의 전통화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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