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15세조이시다. 조부는 기묘사화(己卯士禍)로 함안에 들어오신 부호군(副護軍) 취우정(娶友亭)선생이시고 참의공(參議公) 구옹(懼翁)선생과 숙부인(淑夫人) 함안조씨(咸安趙氏)의 둘째아드님으로 태어나시고 중부(仲父)님이신 찰방공(察訪公) 휘 의로(義老)께서 아드님을 두지 못하여서 그 앞으로 계출(系出)하시었다.

공의 휘는 구(球)이시고 자는 진이(珍以)시며 가정무오(1558)년 도곡(道谷)에서 탄생하셨다. 역세가통(歷世家統)의 유염(濡染)과 부조양대(父祖兩代)선생을 승습(承襲)한 순훈(順訓)이 뿌리박아 효도와 우애하는 것이 습성이 되시고 오죽유 문에서 퇴계선생의 지결을 박황암(朴篁巖)과 이황곡(李篁谷) 선생들을 따라서 강마(講磨)하고 도의를 숭상하였다.

경인(1590)년 예빈사참봉(禮賓寺參奉)을 천수하셨으나 취임하지 아니하고 임진(1592)년에 가재(家財)를 탕진하고 노복(奴僕)들 모두를 동생되시는 봉사공(奉事公) 諱 황(璜)의 의거에다 부쳤다.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남에 동생과 시국대처(時局對處)를 강구하고 방략을 지수함에 공의집과 모든 사람들이 공을 따라 덕유산에 들어가 피난하고 정란(靖亂)후에 다 편안하게 옛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오직 형수님의 절사(節死)와 조카님의 전사(戰死)가 비록 나라와 정절을 지키기 위함이라 하나 공의 지극한 애친정신(愛親精神)에 통석(通惜)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배위(配位)되시는 숙인(淑人) 성산이씨(星山李氏)할머니는 참봉(參奉) 諱 언기(彦沂)의 손녀가 되시고 부원군(府院君) 諱 능일(能一)의 후손이시다.

세 아드님을 두시니 휘 광열(光烈) 적순부위(迪順副尉) 벼슬하시고 호는 지헌(芝軒)이시고 다음은 휘 광세(光世) 적순부위 벼슬하시고 끝으로 휘 광원(光遠) 적순부위 벼슬하시고 호는 만오(晩悟)이시다. 묘소는 공의묘에 합부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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