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수충보리공신(高麗輸忠輔理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순흥군 보문각대제학(順興君 寶文閣大提學)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 성재선생(省齋先生) 일사(逸事)

公의 휘는 집이요 자는 목지(穆之)니 순흥인이라 그 선세(先世)는 신호위(神虎衛) 상호군(上護軍) 子美시니 비로소 역대(麗代)에 나타나고 휘(諱) 석(碩)에 이르러 등제하여 집안을 일으키고 드디어 은덕불사(隱德不仕)하셨고 뒤에 아들이 귀(貴)히 되어 밀직제학(密直提學)으로 추봉(追封)되었으며 배위(配位)는 흥령군(興寧郡) 대부인 안씨(大夫人 安氏)니 검교(檢校) 군기감(軍器監) 성기(成器)의 따님이라 生 子3人에 長은 문정공 축(文貞公 軸)이요

次는 문경공 보(文敬公 輔)요 다음이 즉 公이라 안씨족보(安氏族譜)를 상고하면 밀직공의 아들은 다섯분이 있었는데 주신재(周愼齋)선생 사현정(四賢井) 비음기(碑陰記)에는 특히 父子 4人의 명자(名字)만 나타내니 長과 말(末)2公은 미처 나타나지 못하고 조몰함이 아니었는가 한다.

밀직공(密直公)이 일직 가향(家鄕)으로 물러나와 영리(榮利)를 즐겨않고 모든 아들을 가르쳐서 함께 현대(顯代)에 높은 명망을 얻고 벼슬이 태열(台列)에 이르며 一時에 영요(榮耀)로와졌음을 他 문족(門族)이 견줄바 없더라 公이 두 兄을 섬김에 우애가 융독(隆篤)하여 늦게까지 쇠(衰)하지 않았고 밀직공(密直公)이 세상을 뜨시매 公이 모부인(母夫人)을 받들어 그 성효(誠孝)가 극진하였으며 더불어 사귀는 벗이 모두 당시 명공거인(名公巨人)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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