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16세조 이시다.

()6代祖는 세종조(世宗朝)에서 대제학(大提學)과 병조판서(兵曹判書)를 거쳐 찬성사(贊成事)에 오른 문숙공 휘 숭선(文肅公諱崇善)이며, 5代祖는 참의공 휘 훈(參議公諱訓)이다조고(祖考)는 별제공 휘 자우(別提公諱自祐)이며, 선고(先考)는 안성군수(安城郡守) 휘 온(諱穩)이다

장원서별좌(掌苑署別坐)인 공()은 명문세가(名門世家)의 사손(嗣孫)으로 공신(功臣)의 후예(後裔)답게 일찍이 학문(學問)을 익혀 장원서별좌(掌苑署別坐)로 맡은바 직무(職務)를 충실히 수행해 왔으며, 배위연안김씨(配位延安金氏)와의 슬하에는 동몽교관(童蒙敎官) 휘 길()과 사복시정(司僕寺正) 휘 준()과 감역관(監役官) 휘 수()와 막내아들 휘 경()을 비롯하여 김관(金灌), 김서남(金瑞南) 42녀를 두었다.

16241월 이괄(李适)의 난()으로 공()과 두 아들이 목숨을 잃게 되자 과수(寡守)인 두 며느리와 두 아들과 어린 손자를 데리고 양도공(良度公)의 신주(神主)만을 품에 안은 채 무작정 남하길에 올라 충북 보은군 길상리(忠北 報恩郡 吉祥里)에 짐을 풀었다.

흑석동 불당곡(黑石洞 佛堂谷)에 있는 별좌공(別坐公)의 묘소(墓所)19372월 화성군 태안읍 병점리 방축산(華城郡 泰安邑 餠店里 防築山)으로 이장(移葬)되었는데 참의공(參議公) 후손(後孫)들의 오랜 숙원(宿願)이며 열망(熱望)하던 별좌공(別坐公) 영구(靈柩)를 매화리(梅花里) 여사(女師)의 묘소(墓所)2003422378년만에 꿈에도 그리던 부인(夫人)과 합장(合葬)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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