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14세손이시다. 소윤공파(少尹公派)로 평해(平海)에 자리 잡으신 입향조(入鄕祖)이시다. 公의 증조부는 휘 전(詮)으로 군수(郡守) 및 태복정(太僕正) 贈 승지(承旨)이시고 할아버님은 휘 식(湜)으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내시고 참의(參議)를 증직(贈職)받으셨다. 아버지는 휘 영보(永保)로 현령(縣令)을 지내시고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증직(贈職)받으셨다. 어머니는 은진송씨(恩津宋氏)이다. 성종 14년(1483) 계묘년(癸卯年)에 탄생하셨고 자(字)는 경륜(景倫)이다. 아버지로부터 증조부까지 증직이 수여되었는데 이것은 공이 높이 세운 공적의 덕분으로 받으신 것이다. 이로 미루어 공의 참되고 어지신 은덕을 짐작할 수 있다.

처음 현능참봉 (경기도 구리에 있는 동구릉(東九陵) 文宗과 비 현덕왕후의능)을 받았다. 곧 사선(司饍) (임금의 식사와 대궐 음식을 보는 기관) 벼슬을 하신 이후 지금 재무부(財務部)에 해당하는 호조(戶曹)에서 정5품인 정랑(正郞) 벼슬에 올랐었다. 이 자리들은 책임이 무거운 핵심적인 직위인데 공께서 백난을 극복하시고 사리에 맞게 직책을 완수하여 칭찬을 받았다.

다음에 관동(關東) 지금 강원도 지방에 안렴사(按廉使)로 나가셨다. 이 지방에 변란이 일어났을 때 왕명으로 파견되시어 백성을 살피고 구제하는 직책으로 특별히 유능한 사관(使官)을 임명하게 되어있다. 공께서 부임하여 선악(善惡)을 분별하여 징계와 권장을 시행하였으며 부역과 세금을 줄이고 질병을 치료하고 풍속을 바로잡아 민생(民生)을 안정시켰다.

중종(中宗)께서는 공의 치적(治績)에 공로가 많았음을 생각하시어 특별히 승정원(承政院) 좌부승지(左副承旨)에 임명하셨다. 정3품으로 왕명(王命)을 보필하고 처분을 받아드리는 왕의 비서로 임무가 막중한 자리였다.

당시 조정(朝廷)의 저명한 사람들 사이에 알력이 일어나고 불화의 기미가 보였다. 공께서는 권력다툼을 하고 남을 모함하고 사리사욕에 광분하는 사람을 싫어하시며 오직 정도(正道)만을 신조(信條)로 여기고 정계에 환멸을 느꼈다. 마침내 벼슬을 사양하고 조상산소가 계신 시흥에 내려 오셨다. 이곳에서 속(俗)된 세상을 잊고 일생을 마치고자 조용히 양생양덕(養生養德)하시며 수년을 보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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