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13세조이시다. 조부는 성주(星州) 목사를 지내시고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증직받으신 휘 의(誼)이시고, 부친은 이천부사(利川府使)를 지내신 휘 우삼(友參)이시다. 모친은 숙인(淑人) 청주한씨(淸州韓氏)이다. 공은 1464년 세조 10년에 태어나셨다. 5남중 차남(次男)이셨다. 자(字)는 열지(烈之)라고 했다.

참봉(參奉)을 거쳐 충남 천원군 목천(木川)의 현감(縣監)을 지내시고 이어서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에 있는 토산(兎山)의 현감을 지내셨다.

문관의 정3품 당하관(堂下官)의 관계(官階)인 통훈대부(通訓大夫)이셨다.

형님이신 사과공(司果公) 휘 희(熙)께서 아버님 이천공보다 먼저 돌아가시니 동생되시는 승지공(承旨公) 휘 도(燾)와 승지공 휘 휘(煇)을 거느리시고 부모님을 봉양하며 참판공파의 맏파로서 책임을 다하시기에 정성을 기울이셨다.

배위(配位)는 숙인 창녕성씨(昌寧成氏)이시다. 4남1녀를 두셨는데 장자이신 휘 경인(敬仁)은 진사이시다.

아래 세분 아드님은 다 뒤가 끊겼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손자 휘 윤(輪)이 양성(陽城)군수를 지내셨다.

1504년 연산 10년에 41세로 세상을 뜨셨고 쌍분묘소가 현 군포시(軍浦市) 산본리(山本里)에 있으며 석물(石物)을 갖추어 놓았다. 형제분중 유일하게 양위(兩位)분의 묘소가 실전되지 않고 보존되어 잇으니 다행한 일로 정성껏 가꾸는 후손들의 마음이 새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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