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13세조이시다.

조부(祖父)는 연안부사(延安府使)와 성주목사(星州牧使)를 지내고 이조참판(吏曹參判)의 증직을 받으신 휘 의() 이시고, 부친은 영평(永平) 함안(咸安) 군수를 지내고 이조판서에 증직을 받으신 휘 우하(友夏)이시다. 모친은 세종의 왕자인 밀성군(密城君) ()의 따님이다.

공은 부친 판서공께서 25세 되시던 1481(辛丑)에 둘째 아들로 탄생하셨다.

공의 자제(子弟)는 삼형제시니 사과(司果) 휘 광세(光世)를 중종5丙午에 낳으시고 둘째는 휘 관세(寬世)이시며 셋째는 무후(無后)이시다. 사과공의 배위는 안동장씨이며 장인되시는 휘 장동이(張東以)께서는 나라안에서 손꼽히는 부호였으나 따님 한 분만 낳으시니 사위와 함께 낙향하여 사셨던 것이다.

공의 장인이 돌아가시자 많은 재물을 흩어 시혜(施惠)하시고 무첨재(無忝薺)을 지어 인근자제(隣近子弟)를 모아 글을 익히게 하니 나라, 나라 遺風이 생기고 황간(黃澗)고을에 문장도덕군자(文章道德君子)의 연원(淵源)이 되었다.

무첨재는 선조의 유훈(遺訓)을 이어 시골에 묻혀 살아도 한점 부끄럼이 없다는 뜻이며 199364일 충청북도에서 지방문화재(有形)로 지정되었다.

무오사화, 기묘사화 등을 겪으면서 충북 영동군 황간면 옥전리에 낙향하여 황간파의 입향조가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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