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정대부(通正大夫) 행 연안도호부사(行 延安都護府使) 해주진관(海州鎭官) 병마동첨절제사(兵馬同僉節制使)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겸 동지경연(同知經筵) 춘추관(春秋館) 의금부사공(義禁府事公) 墓誌

公의 휘(諱)는 의(誼)요 字는 의지(宜之)니 순흥 사람이라 고려 명현 諱 축(軸) 之后요 考의 휘(諱)는 숭선(崇善)이니 文科에 장원으로 발탁되어 벼슬이 의정부좌참찬(議政府左參贊)이요 시호(諡號)는 문숙(文肅)이라  문숙공(文肅公)이 취(娶)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 송천우(宋千祐) 之女하여 永樂 21年 계묘(癸卯)에 公을 生하시니 公이 어릴때부터 배움에 독실하사 정통(正統) 정묘(丁卯)에 사마시(司馬試)에 中하고 음직으로 보官하여 여러번째로 의영고직장(義盈庫直長)을 拜하고 사헌감찰(司憲監察)로 승직되어 충훈부경력(忠勳府經歷)과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지내고 나아가 연안부사(延安府使)와  성주목사(星州牧使)를 하시고 성화(成化) 무자(戊子) 10月에 병으로 정침(正寢)에서 졸(卒)하시니 享年이 46이라.

公은 천자(天姿)가 영유(英裕)하시고 효우(孝友)가 숙성하여 어버이 섬김을 지성으로 하고 兄弟에 화목하였으며 동관(同官)과 붕우(朋友)에 반드시 신의로써 대하니 사람들이 심히 경모하였다.

벼슬에 임하여 부지런하고 공경하며 누대(累代) 문예(文藝)로 경전과 사장(詞章)에 익숙하고 일에 접하여는 칼날을 마지함과 같이 하였다. 二大邑을 지켜 성적이 더욱 나타나서 아전에게는 위신으로 두렵게 하고 백성은 인의로서 대하여 명금(鳴琴) 영각에 치화(治化)가 대성하더니 불행(不幸)히 수를 못하시어 사람들이 다 애석히 여기었다.

公이 감찰 윤효동(尹孝童)女를 취(娶)하여 4男2女를 生하시더니 長男은 우삼(友參)이니 선공감정(繕工監正)이요 次는 우건(友騫)이니 형조참판이요. 次는 우익(友益)이니 충의위(忠義衛)로 조요(早夭)하였고 次는 우하(友夏)이니 선공판관(繕工判官)이요, 증(贈) 이조참판(吏曹參判)이다. 장녀는 호군(護軍) 윤강랑에게 출가하였으니 파원위(坡原尉) 윤평지자야라.

이천부사(利川府使) 우참(友參)은 취(娶)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한계미(韓繼美)女하여 生5男2女하니 曰 숙(熟)이요 次는 도(燾)요 삼자(三子)는 점(點)이다.

우건(友騫)은 취(娶) 임영대군(臨瀛大君) 구女하여 무후(無后)하였고 충의위(忠義衛) 취(娶) 주부(主簿) 김철균(金哲勻)女하여 生 二男하니 曰 겸(謙)은 현능참봉(顯陵參奉)이요 次는 환(煥)이요 友夏 판관은 취(娶) 밀성군(密城君) 침(琛)女하여 生 四男二女하니 장남은 曰 찬(燦)이요 차는 요(燿) 형(炯)이며 炯은 後에 담으로 개명(改名)하였고 次는 훈(燻)이요 女는 생원(生員) 손부(孫溥)에게 출가하였고 기타는 어리다. 호군(護軍)은 生 1男 1女하여 남은 귀손(貴孫)이니 순능참봉(順陵參奉)이며 여는 유학(幼學) 한세준(韓世俊)에게 출가하였으니  內外 손지(孫枝)가 무려 수십인이니 아아 성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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