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대부(嘉靖大夫) 충청도도관찰사(忠淸道都觀察使) 겸 출척사(黜陟使) 묘지(墓誌)

 

公의 휘(諱)는 숭효(崇孝)이고 字는 계충(季忠) 호 한백당(號 寒栢堂)이요 고(考)의 휘(諱)는 순(純)이니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호조판서(戶曹判書) 수문전 대제학(修文殿 大提學) 시(諡)는 정숙(靖肅)이요 비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청성정씨(淸城鄭氏)이니 정당문학(政堂文學) 청원군(淸原君) 휘(諱) 공권(公權) 之女니 公이 第4子라 자태와 품성이 단아(端雅)하시고 효우출천(孝友出天)하시며 수학에 노력하사 학업이 숙성하고 일찍 사마시(司馬試)에 中하여 처음 벼슬에 나아가 사리(事理)에 밝게 일을 처리하였다.

일찍 호형공 삼조(戶刑工 三曹)에서 참판(參判)을 역임하시고 다시 사헌부 대사헌(司憲府 大司憲)을 배(拜)하니 사는 곳마다 직분에 있을 때마다 명예로운 소문이 더하였으며 경기 전라 충청 3도의 관찰사를 지내실새 명성과 공적이 더욱 저명하시더니 천순(天順) 경진(庚辰) 3月에 충청감영임소(忠淸監營任所)에서 卒하시니 4月 계유(癸酉)에 금천(衿川) 백사동(栢寺洞) 선고묘하(先考墓下) 갑좌원(甲坐原)에 폄하셨다. 배위(配位)는 정부인(貞夫人) 한산이씨(李氏)니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숙무(叔畝) 之女시니 公의 묘(墓)에 부묘(墓)라 3男4女가 있으니 長은 겸(謙)이니 서령(署令)이요 公보다 20년 먼저 몰하고 次는 눌(訥)이니 판관(判官)이요 일찍 죽고 次는 해(該)니 부사(府使)요 長女는 찬성(贊成) 강희맹(姜希孟)의 부인이요 次는 현감(縣監) 조유(趙愉)의 부인이요 次는 부윤(府尹) 김견수(金堅壽)의 부인이요 次는 부제학(副提學) 유순행(柳順行)의 부인이요 겸서령(謙 署令)은 3女니  취성정(鷲城正) 봉양수(奉陽守) 윤잉손(尹仍孫)에게 출가하셨고 측실(側室) 1男이 계손(繼孫)이요 해 부사(該 府使)는 취(娶) 현령(縣令) 성효원(成孝源) 女하여 生 2男4女하시니 장남(長男)은 존도(尊道)니 참봉(參奉)이요 次는 존의(尊義)니 현감(縣監)이요 女는 직장(直長) 성세균(成世勻) 직장(直長) 김원(金源) 유학(幼學) 이창부(李昌敷) 첨정(僉正) 허연(許衍)에게 각각 출가하였다.

 

 

Copyright ⓒ2004  순흥안씨삼파종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