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산대부 중추원경력(朝散大夫 中樞院經歷) 인수부 소윤공 묘갈명(仁壽府 少尹公 墓碣銘)

오호라 순흥안씨는 고려에서 조선조(朝鮮朝)에 이르기까지 도덕문장과 충효 절의(節義)와 높은 관직(官職)으로 世世 계승되었나니 몇몇 동방(東方)의 문벌 중에 첫번째로 꼽히는 명문(名門)이다. 소윤공(少尹公)은 그런 전형적인 명문가(名門家)에서 태어나시었으나 불행(不幸)하게도 세종조(世宗朝)辛酉年 즉 西紀 1441年에 일찍 세상을 떠나시어 금천(川) 관악산에 장사지냈으니 지금부터 5백여년前의 일이다.

세월이 오래 되고 산과 골이 변천하여 묘(墓)를 실전(失傳)하였으나 지난 을사년(乙巳年) 겨울에 후손 치호(致鎬)가 山에서 수렵을 하다가 우연히 황폐한 무덤에 짤막한 비석이 욱어진 수풀 속에 있거늘 이끼를 잘 씻고 자세히 보니 소윤공(少尹公)의 비석(碑石)이었다.

기쁘고 떨리는 마음으로 널리 경향 각지 종족(宗族)들에게 연락하여 며칠내로 종족(宗族)이 모여 우선 먼저 묘지(墓地)를 닦고 봉분을 넉자 정도 높이고 장차 제향을 모실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많은 후손의 소요자금을 모아서 규모를 조밀하게 하고 위의(威儀)를 속(速)히 갖추었다.

이로서 영원토록 유명(幽明)지간에 안면(安眠)하시게 되셨으니 후손(後孫)의 효성(孝誠)이 특이하다 하겠다.

지금까지 소윤공(少尹公) 실전(失傳)된 묘소(墓所)를 찾으려던 숙원이 한번의 수렵으로 이루어진 공(功)으로 많은 후손들은 한편으로 눈물 지었고 한편으로 기쁨이 컸으니 이 어찌 말로다 형언할 수 있으리.

그러나 차도(車道)가 가까워 묘소 지척지간에 땅이 울려 혹여 혼백께서 불녕(不寧)하실까 두려워 백사동(栢寺洞) 선영하(先塋下) 임좌(壬坐)로 면봉하고 입석(立石)하여 표(表)할새 후손(後孫) 창열보(昌烈甫)가 책현시어(責顯詩於) 하기를 부지런히 하고 노력하니 그 추원효성(追遠孝誠)의 두터움은 이루 다 표현치 못하노라.

근안(謹按)컨대 글에 曰 公의 諱는 숭신(崇信)이요 고려(高麗)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諱 자미(子美)의 후손(後孫)이시다.

-----------------------略----------------------------

 

Copyright ⓒ2004  순흥안씨삼파종회 All rights reserved.